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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현재 태국, 타이랜드로 불려지고 왕과 불교가 중심이되며, 천해의 관광자원으로 동남아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고있다...

팡아와 크라비만에 있는 잘 알려진 타쿠아파의 섬북쪽에 신석기시대 거주지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푸켓의 초기 역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푸켓의 다양한 이름이 고대인도, 중국, 아라비아 또는 유럽의 항해자들을 통해 알려졌지만 지속적이진 못했습니다.

태국의 역사학자들은 푸켓이 2C경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프롤레마이오스가 기술한 지질학서에 언급된 정크실론이라 믿고 있습니다.


푸켓의 옛지도
그후 AD880~916년경 해상무역을 하던 중국과 아라비아, 인도인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듯이 피피 작은섬에 위치한 제비집동굴에 그들의 무역선이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후에 마르코폴로의 세계 일주 코스로 항해에 참여했던 선원들에 의해 푸켓에 관한 이야기가 구전되기도 했으며, 16세기 유럽의 무역선이 상아, 보석, 진주, 코뿔소의 뿔 등을 고역하기 위해 푸켓에 최초로 정박했다고 합니다. 실제 이 시기는 바스코다가마에 의해 인도로 가는 항로가 발견되어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푸켓 동쪽의 사람들은 서서히 부를 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금속수출과 섬자체가 중앙정부에 의해 통제되기 시작했습니다.  

17C후반 벵골만의 탐험가로 유명한 영국인 해밀턴의 저서를 보면 푸켓이 정크실론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크실론
“메르지(Mergee)와 종크셀론(Jonkcelaen)사이에는 정박하기에 훌륭한 몇 개의 항구가 있지만 상당수의 해적들이 있어서 해안가에는 소수의 원주민들만이 있을뿐이다. 해적들은 살레이터즈라 불리우는데 이들은 해안선을 따라 섬에 거주하며 약탈과 노예로 쓰기 위해 사람들을 잡는다. 잡힌 노예들은 아첸(Atchen)으로 수송해서 매매를 하는데 종크실론은 이러한 약탈행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현대 지리학계의 해석에 따르면 메르지는 현재 미얀마 남쪽에 위치한 메르쥐(Mergui)로 그당시 이곳의 아유타야 왕조에 속해져 있었습니다. 일찌기 잔셀론(Janeselone) 또는 정크실론(Junkceylon)으로 표기된바 있는 종크셀론은 메르쥐와 마찬가지로 아유타야의 속국으로 지금의 푸켓이지만 수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었지만 반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답니다.

푸켓의 역사가 본토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기록된 것은 1765-1785년 미얀마에 의해 점령당했을 즈음이고,


찬과 묵 자매
이때 이곳의 성주가 사망하자 그의 부인인 찬과 그녀의 동생 묵은 푸켓을 지키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이는 1787년 아유타야에 있었던 프랑스인 사이먼이 후일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에 기록되어 있었고, 또 다른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서 페인경에 따르면 찬과 묵은 마치 남자처럼 보였고, 푸켓을 지키려 두 개의 망루를 세우고 적에게 얼굴을 감추었으며, 약 한달후에 미얀마군이 본국으로 철수할 때까지 푸켓을 지켜내었고,그들의 업적을 기려 현왕조의 시작인 라마 1세가 그들에게 귀족의 칭호를 수여했다합니다. 공항에서 푸켓으로 오는 길목에 그들의 동상 이세워져 있습니다.

1903년 새로운 산업인 고무나무 가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푸켓은 번영을 더해갑니다. 그후 1933년 푸켓을 독립된 주정부로 인정했으며, 1960년대말 70년대초 푸켓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증가하자 태국 정부에 의해 하와이 니스와 함께 세계 3대 관광 휴양지로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섬이 PHUKET으로 불려지게 되었을까요?


미얀마군의 침공
스리비자야 제국시절(8TH~13TH)동안 푸켓은 말레이말 우장시랑(Ujang Silang)에서 변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탈랑(Thalang)으로 불려졌답니다. 여기에서 우장은 반도를, 시랑은 원주민의 이름이라 합니다. 오래전에 그곳에 살고 있던 폴리네시안 부족의 이름입니다. 시랑은 사랑으로 변화되고, 또 사랑은 차랑으로, 차랑은 다시 탈랑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탈랑은 수코타이 랑캄행 대왕 통치기간(1283~1317) 동안에 태국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실제 과거에 푸켓성이 존재했던 공항과 찬과 묵의 영웅동상 사이에 옛 명성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탈랑이 하나의 읍을 형성하고 있고, 라마 5세 통치기간(1851~1868)동안 섬의 이름이 부켓(Bhuket)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이는 언덕 또는 산을 의미하는 말레이어 부킷(Bukit)에서 어원을 찾을수 있는데, 섬이 바다에서 솟아오른 산모양 같다고 해서랍니다.

실제로 푸켓 내부에는 언덕이나 산이 많이 있습니다.

푸켓은 1967년 공식적으로 “B”가 “P”로 채택되어 Phuket으로 씌어지게 되었습니다.

푸켓 최초의 정착자는 오늘날 타이인으로 알려진 차오남이나 바다집시라 불리우는 바다 유랑족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의 불확실한 민족적 기원은 해밀턴의 기술에서처럼 아마도 19세기 영국에 의해서 해상 약탈행위를 제지당할 때까지 해안선을 따라 선원들을 위협하는 해적행위를 했던 살레이터즈의 우두머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들의 후예는 오늘날 푸켓에서 여전히 볼 수 있으며 부리부리한 눈의 민족으로 심해에서의 수영, 다이빙, 향해술에 뛰어나며 석회석 동굴의 꼭대기까지 올라 제비집을 채취하는 위험한 일들을 기꺼이 해내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무역선들의 교역장으로, 현재는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로 예나 지금이나 현지인보다 많은 수의 외래인들이 오가는. 어쨌거나 아름다운 섬의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관습과 예절

 

 

현재 태국, 타이랜드로 불려지고 왕과 불교가 중심이되며, 천해의 관광자원으로 동남아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고있다...

1. 태국인은 신체에서 머리가 정령이 깃든 신성한 부분이라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호적 행동이라 할지라도 친분이 없는 경우 머리를 만지는 것은 자제해야 합니다.

2. 머리와 반대로 발은 신체에서 가장 밑부분이고 가장 더러운 부분입니다. 우연이라도 누군가의 발을 밟거나 머리를 건드렸을 경우, 즉시 사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발이나 신발을 테이블에 올리지 마십시오. 발을 누군가의 자리로 뻗치지 마십시오. 특히 사원에서 불상이나 스님을 가리켜서는 절대 안됩니다.

4. 왼손은 불결하다고 생각하니 귀중한 물건은 오른손으로 주고 받읍시다.

5. 태국인은 그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합니다. 해수욕 복장으로 사원에 가지말고, 반드시 다리와 어깨가 덮일수 있는 옷을 준비하도록 합시다.
아이들이 불상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들어가지 전에는 항상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6. 전통 태국인은 만날 때 악수를 하지않고 ‘와이’라는 걸 합니다. 이는 절에 갔을 때 합장하는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젊거나 아랫사람이 먼저 와이를 합니다.

7. 짜증나고 화가 나더라도 공손함과 웃음을 잃지 마십시오. 부당하고 불합리하더라도 천천히 상대방을 이해시키도록 노력합시다.

8. 왕을 포함한 왕실은 태국인들에게 절대적 지지와 신뢰,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무심코 왕실을 모독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9. 필요이상으로 상대를 오래 쳐다 보는것도 무례한 행동으로, 때로는 싸움을 거는 행동으로 받아들여 질수도 있습니다.

10. 승려에게 손가락질 혹은 몸에 손을 대서는 안됩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악수를 청하는 행동이나, 차.기내에서 승려 옆자석에 앉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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