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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일상은 늘 분주하다. 기록을 읽고, 기일을 준비하고, 판결문을 쓰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설 여유를 잊고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는 색다른 프로그램이 열렸다. 소규모 차(茶) 테이스팅이었다. 여러 종류의 차를 직접 시음하며 향과 맛을 음미하고, 차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들을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시음하기 전, 같은 나무에서 나온 차가 산화 정도와 가공 방식에 따라 백차, 녹차, 황차, 청차(우롱차), 홍차, 흑차(보이차)로 나뉜다는 설명부터 들었다. 우리가 흔히 모두 '차'라고 부르지만, 같은 찻잎이라도 제조 과정과 산화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풍미를 지닌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세계 3대 홍차로 꼽히는 중국의 기문, 인도의 다즐링, 스리랑카의 우바 역시 저마다 개성 있는 향과 맛으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 왔다.
차의 기원은 중국이다. 중국의 차가 육로를 통해 전해진 지역에서는 '차'가 됐고, 바닷길을 따라 전해진 지역에서는 '티'가 됐다고 한다. 영어 tea는 주요 항구가 위치한 중국 푸젠성 방언인 '테(tê)'에서 유래한 반면, 러시아어 чай(chai), 터키어 çay처럼 '차' 계열의 이름은 광둥어 '차(chá)' 발음이 육상 실크로드를 따라 그대로 전파되면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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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하나에도 인류의 교역사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 셈이다.
차는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세계사의 흐름도 바꾸었다. 오스만 제국이 동서 교역의 주요 육로를 장악하면서 유럽은 새로운 바닷길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초기에는 향신료가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17세기 이후 차 역시 동방 무역의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영국은 인도나 스리랑카 등 식민지에 대규모 차 플랜테이션을 조성했고, 과도한 차세(茶稅)에 반발한 미국 식민지 주민들이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진 보스턴 차 사건은 결국 미국 독립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작은 찻잎이 세계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움직인 것이다.
홍차에 소화를 돕는 효능이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튀김이나 볶음요리 등 기름진 요리를 즐기는 중국이나 육류를 즐기는 나라에서 차 문화가 발달한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음식과 차는 오랜 세월 서로를 닮아가며 발전해 온 셈이다.
시음을 하며 문득 커피와 차의 차이도 떠올랐다. 커피는 열매의 씨앗을 볶아 얻고, 차는 잎을 덖거나 산화시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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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매는 맺고 떨어지며 생을 마감하지만, 잎은 다시 돋아나며 순환을 이어 간다. 그래서인지 커피가 순간의 각성과 소비의 문화라면, 차는 천천히 우러나며 기다림과 재생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듯하다.
차를 마시는 방식에도 동서양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양의 다도는 차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수양하는 정적인 의미를 깊게 두었다. 물론 동양에서도 차는 귀한 손님을 맞이하고 문인들이 교류하는 사교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차를 우리는 과정 하나하나를 수행으로 여기며 자연과 사람을 이으려 했다.
반면 영국의 차 문화는 손님을 접대하고,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사교의 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같은 차를 마시면서도 동양은 깊은 내면의 성찰을, 서양은 타인과의 교류와 관계 형성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시간은 길어야 몇 분이다. 그러나 그 잔 안에는 수천 년의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삶, 서로 다른 문명의 철학이 함께 우러나 있다. 평소에는 무심히 마시던 차였지만, 그날 이후로는 잔을 들 때마다 그 향 너머의 시간과 사람들을 한 번쯤 떠올리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차 한 잔 앞에 머무는 여유는, 어쩌면 세상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가장 조용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김도형 판사(창원지법 진주지원)
동방 무역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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